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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 관광소식/제주의 문화와 역사소식

청소년대상 제주역사 바로알기(일제강점기 알뜨르비행장 및 제주4.3 피해현장) 현장탐방에서,..... 아름다운 제주에도 잊지말아야 할 아픈역사가 있다.

- 제주의 아픈역사를 알아야 아름다운 제주를 안다.
- 아픈역사 현장에서 교훈 삼자

 

사단법인 서귀포룸비니청소년선도봉사자회 (대표 박은교)에서 주관 기획한 제주도내 청소년대상으로 제주의 아픈역사 바로알기 현장순례 프로그램은 7월부터 진행됐다.

장맛비는 예고대로 순례일 73일 토요일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 행사를 연기할까 하는 생각도 안한 것 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일정을 조율하다 어렵게 잡은일정이라 서귀포룸비니청소년선도봉사자회가 준비한 제주역사 바로 알기 프로그램은 예정대로 순례길에 올랐다.

출발지인 서귀포중학교에 모여 발대식을 갖고 출발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날 체험에 나선 중학생들은 열다섯 살 소년의 풋풋함으로 비 날씨에도 학교를 벗어나 모처럼 야외 현장 순례길에 마냥 밝은 모습이다.

제주에는 곳곳 아픈역사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이 모슬포주민들이 강제동원시켜 세계2차대전 전쟁을 위해 비행기 격납고, 고사포진지, 지하벙커 등 만행장소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알뜨르비행장과 제주4.3당시 마을주민 전체가 학살당해 잃어버린마을인 무등이왓마을 4.3피해현장을 전문해설사를 초빙하고 당시상황 해설을 듣고 현장을 직접보며 아픈 제주역사를 배우는 시간으로 순례코스는 선정했다.

모슬포로 향해 빗길을 달리는 임대버스내에서 오늘 행사를 주관하는 서귀포룸비니청소년선도봉사자회 박은교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오늘 우리가 제주 역사를 바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러 한다.” 함께하는 순례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었을 고생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며, 동광4·3순례길에선 4·3사건 때 겪었을 그분들의 큰고초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먼저 순례의 이정표를 들려줬다.

일행은 제일 먼저 일제강점기 마지막 무렵 만들어진 격납고가 운집된 알뜨르비행장에 도착하고 아침식전이라 준비한 김밥을 나눠주고 비를 피해 격납고앞 정자에서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야외 정자에서 오늘 해설을 맡은 제주역사문화연구회장 전영미 해설사 해설이 시작됐고 자욱한 안개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들판이 그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굉장히 평평하게 보이는 이곳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당시 일본군들이 전쟁을 위한 작전상 만든 비행장을 건설한 알뜨르비행장이라고 한다. 그에 따른 노동은 모두 이곳 주민들이 감수해야 했고, 산을 깎고 격납고를 만들고 진지동굴을 만드는데 지역주민들의 피와 땀이 얼마만큼 흘렸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비행기모형으로 만들어진 격납고는 잔디로 지붕이 덮여있어 위에서 보면 그냥 언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투기를 은닉시켜두는 곳으로 활용하려 했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공중폭격을 하고 포가 폭격을 나서면 보병이 땅을 점령하게 되는데 제주도에서 일본전투기가 떠서 중국 난징지역을 폭격했다고 한다. 이때 연료가 부족하면 제주도가 연료 공급지가 되어 연료를 공급했다.

1941 12월에 일어난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처음엔 일본이 승승장구를 했지만 사태는 역전되어 1944 7월 사이판 전투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일본 본토에 연합군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별호작전이 시행되었다.

7가지 본토사수 작전 가운데 사이판을 중심으로 일본에 들어오는 경로와 좌측으로 들어오게 되면 제주군사기지를 만드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1945 2월부터 본격적으로 하루 5천명을 동원해서 만들기 시작해 80만평 규모로 확장되었다. 

실제로 이곳은 가미가제 공격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일본이 남겨둔 이러한 군사기지는 전쟁유적지로 최근 문화재청이 근대 등록문화재로 등록해서 보존하고 있다. 
현재는 다크투어리즘이 유행하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순례에 나선 아이들과 봉사자들 역시 한편으론 새로운 것을 본다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일본군들에게 시달려 숱한 고초를 겪었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몹시도 마음이 아플 수밖엔 없었다.

순례에 나선 아이들과 봉사자들은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로 자리를 옮겨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군 전투사령부로 사용하려 했던 진지동굴은 1.3km로 차도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파놓았다고 한다. 
미함대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적접 동굴에서 어뢰정을 탑재하기 위한 곳으로 군수물자들을 숨겨두기 위한 집결지인 셈이다. 

당시 일본에도 지하벙커를 만들었는데 그것보다 여기 대정에 있는 진지동굴의 규모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상상만으로도 위험천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남아있는 고사포 진지터에 올라서면 맑은 날에는 남쪽으론 마라도가 북쪽으론 한라산까지 다 보인다. 

이 고사포 진지터는 셋알오름에도 3개가 더 있는데 미군정 때도 군사기지로 이용되고 한국전쟁 때는 육군 훈련소로도 이용되었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일제강점기 때 무기를 모두 폭파시켰는데 탄약고터도 폭파시켜 오름이 무너져 움푹 파인 모습이다.

1950 6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이곳에서는 또 다른 비극인 도민학살이 자행된 곳이기도하다. 625사변 당시 정부는 후방에서 북한군과 결탁할수 있는 구실을 들어 예비검속령을 내렸다. 예비검속으로 제주에서만 1,000여명이 단속되었다.
섯알오름에서 예비 검속된 사람들이 학살되어 무고한 민간인 희생이 일어났다. 이때 모슬포 지역과 한림지역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모두 347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바로 시신을 찾을 수도 없게 해 6년 후에야 겨우 찾아갈 수 있었으나 시신이 모두 훼손되어 누구의 시신인지를 알 수 없어 백조일손의 묘를 조성하여 그 비극의 현장을 추모하고 있다.우린 이곳에서 전영미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희생자들을 위한 해설전 먼저 묵념을 올렸다. 묵념을 올리는 아이들에게 장난끼라곤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숙연한 모습이었다.

알뜨르비행장 주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만행장소를 한바퀴 둘러보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미리 예약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준비를 하고 돈방석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오후에 탐방일행은 제주4.3당시 잃어버린마을 동광리에 있는 무등이왓마을로 향했다.
1948 11 15일 마을사람들이 토벌대에게 모두 총살당해 다시는 마을 주민들이 정착을 못한 4·3때 잃어버린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전영미 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있노라니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단지 산간부락에 살고있다는 이유로 폭도로 몰려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현장모습을 망연자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매우 안타까워 몸서리쳐진다.

 


지금은 대나무숲과 집터 흔적만 남아있어 당시에 어떤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이 지냈을지는 그저 상상에 맡길 수밖에는 없지만 이 곳 마을 사람들의 비극은 지금도 아픔으로 전해져 왔다.
학생들을 인솔하고 탐방에 나선 이서정 교사도 역사를 바로 아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러한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 줘서 감사하다 그동안 영상자료로만 보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니 더 생생하게 와 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함께 순례에 나선 윤재빈 학생은 이곳을 둘러보니 그동안 할머니와 학교에서 배운 제주4.3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가슴 아픈 사건들을 잘 알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얘기를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번 순례길에 함께한 아이들이 제주의 아픈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침엔 그렇게 많은 비가 쏟아지더니 제주4.3의 아픈역사를 아이들에게 잘 알리주려는지 탐방를 하는 내내 거의 비는 내리지 않았다. 걷는 길도 순조로워서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 여기서 평화롭게 걷는 그 발걸음이 결코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아픈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